야외를 걷다 보면 사람보다 먼저 다녀간 존재들이 남긴 흔적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. 특히 고라니처럼 우리 주변에 은근히 많이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은 발자국이나 배설물, 먹이 흔적 등 다양한 단서를 남기고 가곤 합니다. 하지만 다른 야생동물들과 혼동하기 쉬워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의 흔적인지 쉽게 지나칠 수 있어요.
고라니의 발자국은 대체로 작고 가느다란 편입니다. 두 개의 뾰족한 발굽 모양이 앞뒤로 선명하게 남는데, 길이는 약 4-6센티미터 정도로 작으며, 형태는 말굽처럼 둥그스름한 형태보다는 뾰족하게 갈라진 느낌이 강합니다. 멧돼지나 노루의 발자국과 구별하려면 형태와 함께 주변 환경도 함께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. 멧돼지의 경우 발자국이 넓고 깊게 파여 있고, 노루는 고라니보다 조금 더 크고 둥근 인상을 줍니다.
배설물로도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합니다. 고라니의 배설물은 작은 콩알처럼 동글동글하며, 다량으로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. 사슴이나 노루의 배설물과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, 고라니 것은 비교적 작고 더 고르게 퍼져 있는 편입니다. 멧돼지의 경우 덩어리 지거나 긴 형태로 남는 경우가 많아 쉽게 구분됩니다.
먹이 흔적 역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. 고라니는 풀이나 나뭇잎을 주로 먹기 때문에 식물 줄기나 잎 부분이 날카롭게 끊어진 흔적이 보입니다. 토끼처럼 아랫니로 깨끗하게 잘라낸 흔적과는 다르게, 고라니는 윗니가 없기 때문에 씹어 뜯긴 듯한 결이 남습니다. 또, 고라니는 비교적 낮은 키의 식물을 선호하는 반면, 노루는 더 높은 키의 덤불도 서슴없이 먹습니다.
또 하나, 고라니는 소리를 잘 내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위협을 느끼면 특유의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냅니다. 밤에 그런 소리가 들렸다면, 그 근처 어딘가에 고라니가 다녀갔을 가능성이 큽니다.
숲길을 걷거나 습지를 지날 때, 이런 작은 흔적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몰랐던 자연의 존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.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낯선 흔적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재미, 그것이야말로 야생을 걷는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르겠습니다.